
여든여덟의 여성을 등장시킨 작품. 남편을 보낸 이후의 짧은 시간을 거침없이 써 내려간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장에 숨이 턱턱 막혀야 하는데 그냥 눈이 따라간다. 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글 정말 잘 쓴다.'
여성작가가 여성의 삶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이 남성인 나에게도 전혀 거부감이 없다는 것 또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p123. 그녀가 보기에 자신의 본질과 운명 사이의 간극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간극이 아니라 현실주의자와 몽상가 사이의 간극이었다.
그 시대의 여성이 거부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고 그 운명이라는 것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우연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애써 자기 합리화하는 문장에서는 그 어떤 페미니즘 도서들보다 강한 울림을 주었다. 작가는 여성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의 주장이 인용되려면 결국 '인본주의'의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초기 페미니즘을 외치던 사람들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여성도 인간이며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메시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이제껏 읽은 책들 중에 가장 직설적이면서도 직설적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장 강한 메시지를 내보이면서도 공감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레이디 슬레인이라는 여성이 가진 생각들이 인간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탈을 쓴 또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
노년을 지내는 여성을 화자로 삼은 점은 하나의 역할을 끝낸 페르소나. 즉 하나의 탈을 벗는 시기여서 적절했다. 그 시기가 되면 자신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멀리서 지켜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93.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두루뭉술하게 사는데, 명백한 잘못입니다. 그래서는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해요. 특히 자기 자신을. 타협하는 순간에 행복은 사라집니다.
주어진 세상과의 타협. 그것은 자신의 행복을 내려놓는 일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에게 집중하느라 세상에 집중하느라. 쉽지 않은 문제가 된다. 지금의 나에게 집중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역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기엔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
오늘조차 위태롭지만 현재의 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현재의 상황에 집중하고 만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결국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재를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격렬한 메시지지만 문장은 늘 차분하다. 노년의 감각은 그렇다. 모든 것이 우주의 먼지처럼 별 것 아닌 것이고 사라져 갈 것이기에 그대로 차분히 내려놓을 수 있다. 그것마저도 좋다는 듯하다. 그래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초조하고 불안할 때 그 자체로 위안이 되는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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