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로맨스의 클리셰라고 하기엔 이야기의 전개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거의 동일했다. 작가는 '스미노 요루' 작가의 찐 팬이거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감동적으로 읽었거나 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이 형식이 일본 로맨스의 하나의 틀이라고 해야겠다. 클리셰 위에 스토리를 올리는 일은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꽤 잘 해낸 듯하다.
진짜 웃음. 혹은 행복을 주고 싶은 소년의 간절함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토마토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클리셰를 쓴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너무 뻔한 스토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반대로 독자가 기대하는 그 장면을 맛깔나게 보여준다면 독자는 환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을 들려주는 것. 뻔한 걸 뻔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클리셰를 이용하는 작가의 힘이다.
병원, 소녀, 불치병, 기록지, 해맑음, 옥상, 여행, 선긋기, 죽음, 고통 그리고 추억을 안고 나가는 소년. 일본 로맨스의 클리셰를 넘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쓴 대부분의 것을 가져왔다. 그럼 물을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런 비난을 어떻게 이겨 낼 건가?
작품은 이야기와 완전 동떨어진 한 프로 사진작가의 코멘트로부터 시작한다. 회상이라는 클리셰마저도 동일했지만 기대가 되는 도입부부터 잘 풀어나갔다.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잘 갈무리했다.
작품은 매끄럽게 기대감을 품고 잘 쓰였다. 단지 내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오디오 파일로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내가 의외로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듯하다는 것과 둘째로 매끄럽게 잘 쓰여 있다는 점이다. 작가가 문장으로 클리셰를 덮어주었다.
늘 당돌하고 해맑은 아이에게 진짜 웃음을 선물하고 싶은 남자아이를 응원하게 된다. 그 마음 하나면 작품은 어떤 전개든 어떤 클리셰든 중요해지지 않는다. 비슷한 노래를 계속 듣게 되는 것과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계속 보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작품에 빠질지 말지는 바로 남주의 마음에 동화되느냐 마냐가 결정할 것 같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듯 웃는 사진에서 모든 것이 말해주고 있다. 가지고 싶을 만큼 예쁜 커버, 말랑말랑한 스토리. 이야기의 진행을 모두 간파할 수 있지만 읽게 되는 그런 맛이 있는 책이었다.
이런 것이 점점 좋아지는 나는 청춘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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