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안녕 나의 무자비한 여왕 (코가라시 와온) - 흐름출판

야곰야곰+책벌레 2024. 5. 3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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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로맨스의 정석이라고 해야겠다. 몸이 아픈 여자와 마음이 아픈 남자의 대립. 여자는 아프다 하지만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다. 그에 반해 남자는 어딘가 삐뚤어져 있다. 여자는 남자의 삐뚤어짐을 바로 잡아주고 남자는 그런 강인함 뒤의 불안한 상태를 마주하게 된다. 남자에게 여자의 모습이 스며들고 여자는 그렇게 사라진다. 작품은 이런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클리세 위에 글이 지겹지 않다면 그 이야기는 대단함 힘을 가진다. 이 책은 대체로 그렇다.

  허무주의자 17세 소년의 로맨스 어떤 여주인공이 그 속에 사랑이라는 싹을 틔어줄까? 이 책은 흐름출판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소노 마키나. 그녀는 특이한 병을 앓고 있다. 일본의 로맨스들은 검색해야 알 수 있는 희귀병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몸속에 셀룰로스가 자라는 병이다. 인간에게 셀룰로스는 소화도 시키기 못하는데 몸속에 생긴다는 설정이다. 물론 수술 후 특정 목적을 위해 셀룰로스를 사용하기는 한다. 인간의 장기는 셀룰로스와 거의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 자체가 식물의 속성을 타서 그럴까. 그녀는 식물을 사랑한다. 매일 병실에서 화분을 가꾸고 꽃집에서 주기적으로 주문으로 한다. 그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하토. 남편을 잃고 건강 교실에 빠져 버린 엄마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일자리가 꽃집이었다. 그런 엄마 또한 식물을 기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 작품이 즐거운 이유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의는 선한 영향을 만드는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로맨스를 택했다. 마키나가 제안한 스무고개 문답은 그 답을 찾아가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예, 아니요"로만으로 진행되는 문답 속에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다. 그리고 세상에 무관심한 이에게 상대를 최대한 관찰하여야 하는 문답은 상대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선하지만 삐뚤어진 남자 주인공은 이런 소설에 딱 맞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신용 같은 걸까. 거부감 없이 응원하게 되는 걸까. 엄마의 등살에 맞춰준다는 사실이 이미 선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키나는 그런 선함에 용기를 심어준 사람이랄까. 17세 소년은 그렇게 세상과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일본 작품 대부분은 기적적인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작품에 희귀병이 언급되는 순간 기적을 바라면 안 된다.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만들고자 하는 작품들과는 차별점이 있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겠지만 적어도 의미 있는 이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너무 슬퍼 아름다운 이야기다. 작품 결말의 마침표는 여러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청춘의 치열했던 사랑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줄까. 그것이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뜨뜻미지근한 삶을 보낸 나에겐 늘 대리 만족을 주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도 그중 하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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