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죽인다. 저 언니 죽이는 언니였네."
무대 뒤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34호는 작은 모니터로 17호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보았을 때만 해도 순한 인상이라 발라드를 부를 줄 알았다. 그런데 락이라니. 34호는 17호의 무대를 보면서 너무 즐거웠다. 사실 이렇게 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작년 한 해 코로나로 인해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다. 매일 무대에 서다시피 한 34호에게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간절함과 함께 월세를 빌려야 할 경제적 문제도 있었다. 노래가 좋아서 선택한 길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34호는 자신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아야 했다. 방역 때문에 현장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40대의 여성 뮤지션으로 설 수 있는 무대는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 JTBC의 <싱 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라는 얘기를 지인들에게 들었다.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르게 노래가 간절한 고수들의 오디션이었다. 34호는 자신이 노래할 무대를 찾은 듯했다. 시즌2를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참가 결정을 했고 여기에 섰다. 곧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34호는 살짝 들뜨기 시작했다.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진행을 맡고 있는 가수 이승기가 나를 맞이 했다. 무대 건너에는 8명의 심사위원이 있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저들은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나는 노래를 부를 곳을 찾고 있었고 나의 노래를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오늘은 저들이 나의 관객이다. 34호는 점점 더 즐거워졌다.
나를 소개하는 시간. 34호는 갑자기 웃음이 났다. 사사로운 기억을 소환해 적은 문구가 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전해질 생각을 하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34호는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고 이내 웃음 다스리며 입을 다물었다.
"나는 희열 부인이었던 가수다."
이승기가 문장을 읽자마자 심사위원들은 난리다.
"어떡해. 결국 이런 날이 왔어." 김이나 작사가가 말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슈퍼주니어 규현이 말했다.
그러는 사이 이승기는 "나는 희열 부인이었던 가수다."라고 다시 읽었다. 특히 '이었던'을 강조했다.
"자 언제입니까?" 규현이 말했다.
유희열 작곡가는 난처한 척하더니 "많이 변했네?"라며 진지한 척을 했다. 원래부터 좋아하던 작곡가라 내심 좋았다. 이렇게 대화도 할 수 있구나란 생각이 스쳤고 현장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 받아주기로 했다.
"잘 지냈어?"
모두들 즐거워했다. 무대는 원래 이런 곳이었지. 관객과 소통하며 음악 하는 곳. 34호는 재즈카페에서 공연하던 시절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승기가 지원 동기를 물었을 때 대답하다 울컥할 뻔했다. 진지하게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 인생. 내가 책임지며 사는 인생. 굴곡이 있다고 내 존재마저 굴곡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재작년 재즈카페에서 공연했던 이야기. 월세를 내지 못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 나의 노래를 대중들에게 평가받고 싶다는 얘기까지 모두 했다. 노래가 못할까 봐 무섭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노래를 계속하기 위해 유명해지고 싶다는 얘기도 굳이 하지 않았다.
34호는 가볍게 목을 풀었고 그녀 목소리에 심사위원들은 놀랬다. 특히 김이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누르고 싶은 모습이었고 윤도현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34호는 준비되었다는 사인을 보냈다. 음악이 시작되었고 34호는 애드리브로 시작하였다. 그 순간 윤도현은 느닷없이 어게인 버튼을 눌렀다. 나중에 얘기했지만 윤도현은 그 지점에 이미 가수와 소통이 된 것 같아서 믿고 눌렀다고 했다.
처음 듣는 장르의 노래였다. 재즈 같으면서 생경했다. 유희열은 입이 벌어졌고 심사위원들도 얘기를 나누느라 분주했다. 김이나는 더 이상 참기 힘든지 어게인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34호는 어게인 버튼에 불들이 하나둘 켜지는 것을 보았다. 관객들이 환호하던 기억이 나서 더 즐거웠다. 마지막 음을 내뱉고 있을 때에는 모든 어게인 불이 켜졌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고민의 답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심사평의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유희열이 급히 말했다.
"34호님은 정말로 재야의 고수시네요"
기뻤다. 행복했다. 나의 노래를 들은 이들이 좋아해 줘서..
심사평을 하다 머뭇거리던 선미는 "언니... 사랑해요"라고 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이해리가 "너무 멋있다"라고 외쳤다. 34호는 여성들의 응원이 특히 좋았다. 여자가 같은 여자에게 너무 좋다고 얘기해 주는 것이 최고의 찬사라고 느껴졌다. 무대에 제대로 설 수 없었던 2년 가까운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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