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겁니다. 따라서 그 기업 임직원이나 주주와 정 반대편에 서게 되죠. 만약 공매도 투자자가 큰돈을 벌게 되면 엄청난 분노가 일어납니다. 주가 하락으로 누군가가 크게 돈을 잃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가 급락은 회사 직원과 투자자뿐 아니라 공급업체·지자체·채권자 같은 수많은 이해관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스쿨의 사샤 인다르테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공매도를 싫어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실패로부터 이익을 얻는 게 기분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매도자는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볼 때 이익을 얻죠. 마치 이웃집에 대한 보험에 가입했는데 이웃집이 파괴된 것과 같습니다.”
주가 시장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7%에 불과하다. 외국인이 67.9%, 기관이 30.4%로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이미 가지고 있는 총알을 비교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주가를 움직이는 것도 이들이다. 개인은 절대 더 비싼 값에 주식을 사지도 않고 더 싼 값에 주식을 팔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의 안목으로 시장의 흐름 속에서 이익을 노린다.
그런 압도적인 차이에 제도적인 문제는 항상 제기되어 왔다. 은행에서 큰 손에게 우대 금리를 적용시켜 주듯 주식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하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개인 투자자와 기관·외국인 투자자 간 공매도 거래 요건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도 개미들의 의심을 키우는 요인입니다. 공매도를 하려면 우선 주식을 빌려야 하는데, 주식을 빌리려면 담보가 필요합니다. 주식, 채권, 현금 등을 빌리려는 주식 대비 일정 비율 이상 갖고 있어야 공매도를 위한 주식 차입이 가능한데, 이 비율이 개인은 120%인데 반해 기관과 외국인은 105%입니다.
예를 들면, 개인은 2천만 원을 담보로 1억 원어치 주식을 빌릴 수 있지만, 기관과 외국인은 500만 원만 있어도 1억 원어치 주식을 차입해 공매도에 나설 수 있습니다. 공매도한 주식을 다시 갚아야 하는 기한도 개인은 한 번에 최장 90일로 제한되지만, 기관과 외국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제한이 없습니다. 주가가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팔면 되니 기관과 외국인이 더 유리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가지고 있는 돈도 많은데 기한 또한 무제한이니 무조건 견디면 필승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공매도는 98%의 승률을 보인다고 할 정도니 개인 투자자들의 공매도에 대한 혐오는 이로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더 치명적인 것은 시스템이며 게다가 이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하는 의지가 어느 정부에서도 보이질 않는다.
어떻게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팔 수 있냐고요? 주식을 팔겠다는 매도 주문은 증권사가 접수하고 한국거래소가 처리합니다. 그런데 증권사도 거래소도 주문자가 주식을 빌리고 주문을 내는 건지 빈손으로 주문을 내는 건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길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주식을 차입하는 대차거래 기록은 예탁결제원 등이 들고 있는데, 매도 주문을 처리하는 증권사·거래소와 예결원 간 전산이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IT 강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일 정도 처리할 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공무원들끼리의 알력 싸움이거나 귀찮거나 기득권 세력에게 불리한 일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법 공매도뿐만 아니라 주가 조작도 판을 친다. MSCI에 편입은 공매도의 유무보다 이런 시스템적인 문제가 더 크다. 주가 조작이 가능한 시장에 어떤 안정적인 자금이 진입하려고 들까.
얼마 전 정부는 공매도 금지 카드를 갑자기 꺼내 들었다. 지난 팬데믹처럼 주가가 폭락하던 모습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갑작스러운 공매도 카드는 내년 6월 말. 즉, 총선 직후까지다. 그런 의도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의심해 볼만한 행동이다. 의도했거나 멍청하거나. 그리고 공매도는 첫날 이후 아무런 힘을 쓰질 못하고 있다. 나스닥은 지속해서 상승 중인데도 말이다.
한국거래소 설명에 따르면, 공매도 금지 이후 최근 공매도 주문의 대부분은 시장조성자가 아닌 유동성공급자 쪽(파생상품)에서 나오고 있다. 거래소가 6일 시장조성자들에 “시장조성자 의무를 일시적으로 면제해 준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영향이다.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니 공매도를 자제하라는 얘기다. 임시방편으로 ‘의무 면제’ 조치에 나섰던 거래소는 이번 주 중으로 시장조성자 의무 완화 기준 등을 결정해 적용할 계획이다. 비슷한 조처는 2020년 공매도 금지 당시에도 나온 바 있다.
공매도 금지라고 떠들어대는 뉴스를 자세히 들여다보질 않으면 공매도 전면 금지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 이후에 오히려 공매도 양이 늘었다. 예외 조항은 관심 있게 보는 사람 혹은 주식 투자를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들다. 그리고 외신은 이에 대해 일제히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로이터통신>은 "MSCI는 한국을 선진시장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공매도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목해 왔다"라며 "이번 조치로 한국의 선진시장 진입이 늦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블룸버그>는 "공매도 금지는 1조 7000억 달러(약 2210조 원) 규모의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 자본 투자를 억제하고, MSCI 지수에서 선진시장 지위를 얻으려는 한국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바이에 있는 달마캐피털의 게리 두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공매도 금지는 한국이 선진시장으로 올라서는 데 분명히 방해가 될 것"이라며 "초기에는 주가 급등으로 이어지겠지만, (한국은) 공매도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전체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이 공매도 금지를 발표한 날, 필리핀은 공매도를 받아들였다. 필리핀은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이번 조치가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비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공매도 자체보다는 시스템 개선에 나서야 할 정부가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공매도는 순기능과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에서는 공매도를 잘못하여 크게 손해 보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그건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매도 상환기한도 별도 규정을 정해뒀다. 증권사 등 기관끼리 주식을 빌려주는 대차 거래 시 3개월‧6개월‧1년 단위 상환 만기 조건으로 계약한다. 상환 만기 기간 내에는 리콜(Recall‧팔기 위한 현물 회수)이 금지되지만, 만기 뒤 빌려준 주식이 급등했다는 이유로 리콜을 요청하면 반드시 거래일로부터 2일 안에 상환해야 한다.
국내 상황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국내에선 개인의 공매도 대여 기간은 90일로, 외국인‧기관이 최대 1년인 것에 비해 짧다. 그래서 주가 예측이 어렵고 예측에 실패하면 주식을 빌린 증권사가 강제로 회수하는 ‘반대매매’에 직면할 위험이 크다. 하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계약마다 상환기간이 달라질 수 있어 사실상 무기한 대여도 가능하다.
우리 금융 시스템도 어서 빨리 정비되길 기대해 본다. 건전한 투자를 위해서는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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