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향성은 매력적인 성격 유형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이상화시키며 되려 강압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향적이라고 말한 미국인은 40%에서 50%로 늘었다. 이것은 그들의 성격의 변화가 아니라 외향성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내향성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본질적으로 병적인 수줍음을 뜻하는 '사회불안장애'라를 앓는 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이는 그런 사람이 많아졌다기보다는 사회가 외향성에 동조하도록 억압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내향적 사람과 외향적 사람은 그저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를 뿐이다. '고 반응성' 아이들은 외향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물체와 소리와 냄새에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이고 조용한 아기들이 조용한 이유 역시 내향적인 게 아니라 신경계가 새로운 것에 별 감흥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신경계의 민감도는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알아차림'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홀로 일하기를 좋아하고, 고독은 혁신에 촉매가 될 수 있다. 내향성은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하게 하고, 일과 무관한 사회적, 성적 문제에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방지한다. 시간에 쫓기거나 사회적 압벽을 받거나 멀티태스킹을 해야 하는 경우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뛰어나다.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보다 정보 과부하를 잘 처리한다. 외향적인 사람은 '지금 상태'를 보는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만약 ~ 한다면'이라고 묻는 듯하다.
내향적인 사람이 어떻게 대중 앞에서 효과적으로 연설할 수 있을까? 그것은 리틀 교수가 말하는 '자유특성이론'이라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자유 특성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한 성격 특성을 타고나거나 문화적으로 함양되지만, "개인에게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를 위해 거기에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자기가 아끼는 사람 혹은 다른 귀중한 것을 위해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리틀 교수에 따르면 의미도 있고 스스로 통제할 수도 있고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지지해 주는 '자기만의 핵심 프로젝트'에 몰두할 때 우리는 삶은 극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이다. 열정을 불러일으키거나 도전해 볼 만한 일을 발견한다면, 잠시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는 '감정의 휴가'를 가질 수 있다.
외향적인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자기주장이 강하고 지배적인 사람들에게 휩쓸려 버리기 쉽다. 그건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한동안 유행했던 '브레인스토밍' 또한 그렇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참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오히려 비대면의 브레인스토밍이 나을 수 있다. 어떻게든 '동료집단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SNS에서 지인들이 놀라는 행동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집단 지성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발전이라기보다는 사회의 발전, 더 노골적으로 기업을 위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주도적 향상은 '의도적 연습'에 의해 이뤄지며 이것은 여러 이류로 혼자 있을 때 가장 잘할 수 있다. 강한 집중력은 다른 사람이 있으면 산만해지기 쉽고 강력한 동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자신에게 가장 힘겨운 일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혼자 있을 때만 할 수 있다. 상황을 '자기가' 주도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그룹 수업에서는 전체 중 아주 작은 시간만을 주도할 수 있을 뿐이다.
세상의 발전에는 아주 많은 내향인들이 기여했다. 상황에 따라 내향인이 필요할 때가 있고 외향인이 필요할 때가 있다. 조용한 조직에서 리더는 외향 적어야 하지만 활기찬 조직에서 리더는 오히려 내향적일 때 더 잘 작동한다. 내향인은 좀 더 주의 깊게 생각하고 외향인들이 정확성을 속도와 바꿀 때에도 그라다 포기할 때에도 묵묵히 문제를 물고 늘어진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좀 더 주의를 기울인다.
'적자생존'의 문제가 존재한다면 외향적인 모습은 점차 다수종이 되어야 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듯하다. '느림의 미학'일 수도 있고 꼼꼼하고 섬세한 것이 생존에 불리하지 않을 수 있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PR 해야 하고 많은 사람 앞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교육은 내향적인 성격을 고쳐야 할 성격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내향적인 성격은 고쳐야 할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 앞에서 하는 많은 행동은 관찰을 당하는 일이고 이것은 생존에 위협적인 일이다. 관찰을 당하는 것은 포식자에게 포착되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릅쓰는 것은 강인함의 표현일 수도 있고 무모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무능함인 것은 아니다. 그저 익혀 나가야 할 기술 중에 하나인 것이다.
내향적인 성격에 불안해하거나 좌절하지 말자. 많은 내향적인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잘 관리하고 필요할 때만 적극적으로 자신을 내보이는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해냈다. 아인슈타인도 빌 게이츠도 워런버핏도 그랬다. 자신의 강점을 잘 살리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기술을 익히는 것으로 내향적인 것은 오히려 큰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